남매가 서로에게 심술을 부리던 날, 놀이를 바꿔본 경험
남매를 키우다 보면 별일 아닌 것 같은데 하루 종일 서로 부딪히는 날이 있습니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갈 작은 말 한마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화를 내기도 하더라고요. 특히 두 아이의 기분이 동시에 좋지 않은 날에는 부모가 보기에도 “오늘은 왜 이렇게 계속 부딪히지?” 싶은 순간이 많습니다.
얼마 전에도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특별히 큰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다른 아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건드리면서 시작된 작은 실랑이가 점점 커졌고, 이후에는 무엇을 하든 서로에게 심술을 부리는 모습이 이어졌습니다.
처음에는 평소처럼 놀이를 계속하면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같은 놀이를 계속할수록 분위기가 더 나빠졌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아이들에게 하던 놀이를 잠시 멈추고 전혀 다른 놀이를 제안해봤습니다. 놀랍게도 놀이의 방향을 바꾸자 아이들의 표정과 말투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침부터 시작된 작은 충돌
그날 아이들은 거실에서 블록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나름 사이좋게 각자 건물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한 아이는 높은 탑을 만들고 있었고 다른 아이는 그 옆에 작은 집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한 아이가 필요한 블록을 찾으면서 시작됐습니다. 마침 다른 아이가 비슷한 모양의 블록을 가지고 있었고,
먼저 사용하고 있던 아이에게 그것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거 나한테 줘.”
“싫어. 내가 먼저 가지고 있었어.”
평소에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조금 기다리면 아이들이 알아서 해결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다른 아이의 블록을 살짝 가져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내 거 가져갔잖아.”
“조금만 쓰려고 했어.”
그 뒤로는 서로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 아이가 쌓아둔 블록을 다른 아이가
지나가다가 살짝 건드렸고, 그러자 “일부러 그랬지?”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상대방은 아니라고 했지만 이미 마음이 상한 뒤였습니다. 작은 일이 또 다른 작은 일을 만들면서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놀게 두었을 텐데
저는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남매가 놀다 보면 이 정도의 다툼은 흔하기도 하고,
부모가 매번 개입하면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할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조금 달랐습니다. 아이들이 서로의 놀이를 방해하는 행동이 계속됐습니다.
한 아이가 자동차를 굴리면 다른 아이가 길을 막았고, 한 아이가 블록을 쌓으면 다른 아이가 옆에서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관심을 끌었습니다.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를 따지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둘 다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이 쌓여 있었고,
그 감정을 직접 말하기보다는 작은 심술로 표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때 저는 아이들에게 잠시 블록을 내려놓자고 했습니다.
“오늘은 블록 놀이 그만하고 다른 거 해볼까?”
한 아이는 바로 싫다고 했습니다. 다른 아이도 블록을 계속 가지고 놀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즐겁게 놀던 아이들이 이제는 블록 자체보다 서로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블록을 치우고 새로운 놀이를 제안했습니다.
평소와 다른 놀이를 꺼내봤습니다
그날 선택한 놀이는 간단한 역할놀이였습니다. 집에 있던 인형과 작은 가방, 종이 몇 장을 꺼냈습니다.
아이들에게 “오늘은 병원 놀이 말고 가게 놀이를 해볼까?”라고 물었습니다.
한 아이는 별로 관심이 없는 표정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도 처음에는 소파에 앉아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종이에 과일 그림을 그리고 작은 가게를 만들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는 대단한 준비가
아니었습니다. 종이에 사과와 바나나를 그리고 책상 위에 올려놓은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조용히 다가왔습니다.
“이거 얼마야?”
“음, 사과는 두 개에 천 원이야.”
그러자 아이가 장난감 돈을 가져왔습니다. 조금 떨어져 있던 다른 아이도 그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가게 주인 할래.”
아까까지 서로 블록을 빼앗던 아이가 이번에는 가게 주인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아이는 손님 역할을 맡았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조금씩 역할놀이가 시작됐습니다.
아이들의 말투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놀이를 바꾸고 나서 아이들의 말투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서로에게 “하지 마”, “내 거야”, “왜 그래”라는 말을 반복했는데 놀이가 시작되자
서로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뭐 사러 왔어요?”
“사과 주세요.”
“몇 개 드릴까요?”
단순한 역할놀이였지만 두 아이가 서로를 공격하는 대신 서로의 행동에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들어야 놀이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한 아이가 엉뚱한 물건을 팔면 다른 아이가 웃었습니다. 그 웃음이 계기가 되어 둘이 눈을 마주쳤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서로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싫어하던 아이들이었는데 어느 순간 같이 웃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놀이의 분위기가 아이들의 감정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놀이 하나로 서운했던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계속 충돌하던 흐름을
잠시 끊어주는 역할은 했던 것 같습니다.
한 아이가 먼저 웃기 시작했습니다
놀이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아이가 장난스럽게 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렸습니다.
“이 사과는 만 원입니다.”
그러자 다른 아이가 크게 웃었습니다.
“너무 비싸!”
“그럼 오천 원.”
“그래도 비싸.”
아이들은 가격을 흥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심술을 부리던 아이들이
이제는 놀이 안에서 장난을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일부러 대화에 많이 끼어들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다시 서로의 반응을 살피면서 놀이를
이어갈 수 있도록 조금 떨어져 지켜봤습니다.
한 아이가 물건을 하나 건네면 다른 아이가 받아들었습니다. 역할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가게 놀이가 끝나고 나서는 인형에게 음식을 배달해주는 놀이로도 연결됐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분위기를 바꾸려고 시작했던 놀이가 점점 아이들 스스로 만든 이야기로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아이들이 정말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놀이가 한참 진행된 뒤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정말 장난감 때문에 싸웠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블록 하나가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블록과는 상관없는 일에도 서로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한 아이가 웃기만 해도 다른 아이가 “왜 웃어?”라고 물었고, 다른 아이가 가까이 다가오기만 해도 싫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두 아이 모두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피곤했을 수도 있고, 아침부터 작은 일들이 마음에 쌓였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처럼 “오늘은 내가 기분이 안 좋아”라고 설명하기 어려우니 그 감정이 행동으로 나타났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누가 잘못했는지를 찾아내는 것보다 아이들의 상태를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매가 싸우는 모습을 보면 부모는 자연스럽게 문제 해결에 집중합니다. “누가 먼저였어?”, “누가 잘못했어?”, “동생에게 양보해”
같은 말을 먼저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날처럼 아이들의 감정이 이미 많이 지쳐 있는 상황에서는 정확한 해결책을 알려주는 것보다 잠시 상황을 바꿔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될 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놀이를 바꾼다고 문제를 피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놀이를 바꾸는 것이 단순히 싸움을 피하는 방법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계속 같은 놀이를 하라고 하면 서로에게 신경 쓰는 행동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이미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는
평소에는 재미있던 놀이도 경쟁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놀이는 아이들의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줬습니다. 누가 블록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지가 아니라
누가 어떤 물건을 팔고, 누가 무엇을 살 것인지가 중요해졌습니다.
역할이 생기니 서로가 필요한 존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가게 주인이 혼자서는 놀이를 이어갈 수 없었고 손님 역할을
하는 아이도 상대방이 있어야 재미있었습니다.
결국 놀이의 구조가 아이들의 관계를 조금 다르게 만들어준 셈입니다.
남매가 다시 가까워지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놀이를 시작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아이가 자연스럽게 옆에 붙어 앉았던 장면입니다.
아침에는 서로 멀리 떨어져 놀았고 상대방이 가까이 오는 것도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가게 놀이가 시작되고 나서는
한 아이가 다른 아이 옆으로 의자를 끌고 왔습니다.
“여기 앉아. 내가 손님 할게.”
그 말을 듣고 다른 아이가 웃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아이들의 관계가 참 빠르게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이라면 한 번 서운했던
일이 생기면 꽤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재미있는 놀이를 함께하다 보면 다시 가까워질
여지가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모든 다툼이 놀이 하나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충분히 이야기를 나눠야 하고,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말할 시간을 줘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분위기가 꼬여서 계속 충돌하는 상황이라면 잠시 다른 놀이로 전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가 개입하는 순간에도 순서가 필요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부모의 개입에도 순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이들이 싸운다고 해서 무조건 바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단순히 장난감을 두고 의견이 다른 것인지, 아니면 이미 피곤하거나 속상한 감정이 쌓여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날 아이들은 후자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장난감 문제는 시작에 불과했고,
이후에는 서로의 행동을 계속 부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가 옳은지를 결정하기보다 일단 감정이 더 커지지 않도록 놀이를 멈추게 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활동을 제안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너희는 왜 이렇게 싸우니?”라고 말하지 않은 것도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마음이 불편한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하면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오늘은 둘 다 기분이 별로인 것 같네. 잠깐 다른 놀이 해볼까?”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그 말을 듣고 특별한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놀이에 참여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아이들의 감정을 억지로 없애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싸우면 빨리 화해시키려고 했습니다. “이제 그만하고 사이좋게 놀아”라고 말하고 서로
사과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사과가 필요한 상황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때리거나 물건을 일부러 망가뜨렸다면 자신의 행동에 대해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기분이 상하고 서로 심술을 부리는 상황이라면 아이들이 감정을 조금 가라앉힐 시간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정은 부모가 “그만 화내”라고 한다고 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다른 놀이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이 풀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날 아이들은 가게 놀이를 하면서 웃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 순간 아침에 있었던 일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습니다.
“아까 블록은 내가 먼저 가지고 있었잖아.”
“응. 근데 다음에는 같이 쓰자.”
짧은 대화였지만 저는 그 말을 듣고 조금 놀랐습니다. 부모가 해결책을 정해주지 않았는데 아이들 스스로 다시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입니다.
놀이를 바꾸고 나니 부모의 마음도 편해졌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계속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부모도 점점 지칩니다. 처음에는 차분하게 말하다가도
같은 일이 반복되면 목소리가 커질 때가 있습니다.
저 역시 그날 오전에는 몇 번이나 “그만 좀 싸워”라고 말할 뻔했습니다. 그런데 놀이를 바꾸고 아이들이
웃기 시작하자 저도 자연스럽게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부모의 감정도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제가 계속 긴장하고 아이들의 행동을 지켜보면
아이들도 더 예민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제가 조금 여유를 갖고 놀이를 지켜보면 아이들도 분위기를 편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남매가 싸울 때 무조건 빨리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먼저 저 자신부터 한 번 돌아보려고 합니다.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훈육인지, 잠깐의 거리두기인지, 아니면 분위기를 바꿀 새로운 놀이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날의 경험이 알려준 남매 놀이의 또 다른 모습
아이들이 가게 놀이를 끝낸 뒤에는 다시 블록을 꺼냈습니다. 이번에는 아침과 조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한 아이가 블록을 들고 “이거 필요해?”라고 물었고 다른 아이가 “응, 여기 줘”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침에는 같은 블록 하나를 두고 서로 가져가려고 했는데, 오후에는 서로 필요한 것을 건네주고 있었습니다.
물론 몇 분 뒤 또 다른 문제로 작은 말다툼이 생기기는 했습니다. 남매 육아에서 이런 변화가 하루 만에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저는 웃음이 났습니다. 아이들은 싸우고 다시 놀고, 또 의견이 달라지고 다시 맞춰가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남매가 함께 성장하는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것만 바라보기보다,
서로 부딪힌 뒤 다시 놀이를 이어갈 수 있는 힘을 키워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술을 부리는 날에도 아이에게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심술을 부리는 모습을 예전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됐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일부러 상처를 주는 행동을 무조건 이해해줘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보고 “왜 이렇게 심술을 부리지?”라고 판단하기 전에 아이의 상태를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피곤했을 수도 있고, 관심을 받고 싶었을 수도 있고,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남매는 부모의 관심을 서로 나누어 가져야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예민해지는 순간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아이가 아빠에게 기대면 다른 아이도 자연스럽게 가까이 오려고 하고, 한 아이를 칭찬하면 다른 아이가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심술을 단순히 나쁜 행동으로만 바라보기보다 그 안에 어떤 감정이 있는지 살펴보는 습관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에도 같은 상황이 생긴다면
앞으로도 분명 비슷한 날이 있을 것 같습니다. 남매가 하루 종일 사소한 일로 충돌하고 서로에게 심술을 부리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먼저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기 전에 아이들의 상태부터 살펴보려고 합니다. 너무 피곤해 보이거나 감정이 많이 쌓인 것 같다면 하던 놀이를 잠시 멈추게 하고 분위기를 바꿔볼 생각입니다.
새로운 놀이가 거창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책 한 권을 읽거나, 역할놀이를 하거나,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평소와 다른 활동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다시 웃기 시작하면 그때 천천히 아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감정이 한창 올라와 있을 때보다 마음이 편안해진 뒤에 이야기하는 것이 서로의 말을 듣기에도 좋으니까요.
그리고 아이들이 스스로 다시 가까워지는 모습이 보인다면 굳이 “화해했지?”라고 확인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놀이를 이어가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회복 과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매 육아에서 부모가 배운 작은 변화
그날 저녁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 낮에 있었던 일을 생각해봤습니다. 아침만 해도 “오늘은 왜 이렇게 힘들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소한 일마다 서로 부딪히고, 말 한마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도 조금 지쳤습니다.
그런데 놀이 하나를 바꾸고 나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아이들이 갑자기 착해진 것도 아니고 서로 싸우지 않게
된 것도 아닙니다. 단지 서로에게 집중하며 충돌하던 상황에서 새로운 것에 함께 집중할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 작은 변화가 생각보다 컸습니다.
아이들의 감정을 억지로 바꾸려고 하기보다 환경과 놀이의 흐름을 바꿔주는 것도 부모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됐습니다.
남매가 서로에게 심술을 부리는 날은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 장난감 하나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누가 먼저 할지를 두고 다투기도 할 것입니다.
그때마다 완벽하게 중재하는 부모가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아이들의 행동만 보고 바로 판단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오늘 아이들이 왜 이렇게 예민할까?” 하고 한 번 더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때로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훈육보다 휴식일 수도 있고, 긴 설명보다 잠깐의 놀이 전환일 수도 있으니까요.
결국 다시 함께 웃었던 남매
그날 하루를 돌아보면 아이들이 특별히 대단한 일을 한 것은 아닙니다. 오전에는 블록을 두고 싸웠고, 한동안 서로에게
심술을 부렸습니다. 그러다가 새로운 가게 놀이를 시작했고, 역할을 나누면서 다시 웃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블록을 꺼내 함께 놀았습니다.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한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내일도 가게 놀이 하자”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아이는
“응. 내일은 내가 계산할게”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침이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대화였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아이들이 싸우지 않는 관계보다 싸운 뒤에도 다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관계를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매는 앞으로도 계속 부딪힐 것입니다. 서로의 장난감을 탐내고, 관심을 받고 싶어 하고, 자기 생각을 먼저 주장할 것
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시 놀고, 다시 웃고, 다시 서로를 찾는 경험도 계속 쌓일 것입니다.
이번에 제가 배운 것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아이들의 감정을 무조건 없애려고 하기보다, 그 감정이 조금 가라앉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부모가 할 수 있는 중요한 도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날은 평소 하던 블록 놀이를 잠시 멈추고 다른 놀이를 선택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작은 선택 덕분에 아이들은 다시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남매가 또 서로에게 심술을 부리는 날이 오면 그날의 모습을 떠올려보려고 합니다.
누가 옳은지부터 따지기 전에 아이들의 표정을 살펴보고, 지금 하고 있는 놀이가 아이들의 마음을 더 부딪히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잠시 멈추고 새로운 놀이를 꺼내보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싸우지 않는 하루를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지만, 싸운 뒤 다시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은 부모가 조금씩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날의 남매는 하루 종일 서로에게 심술을 부렸지만 결국 다시 함께 놀았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남매의 관계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작은 다툼과 화해, 놀이와 웃음이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들이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며 조금은 여유를 가져보려고 합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아이들이 다시
서로를 찾을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믿어보려고 합니다.